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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back

   “… 처음부터 시작하죠, 카토그래퍼. 함께 투입된 동료들의 코드네임을 기억합니까?”

   “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만 말해도 괜찮습니다."

   사위가 적당히 어둡게 조성된 방이 제법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적당히 깔끔하게 꾸며진 방에 제가 누워 있는 침대의 옆에 앉아 말을 거는 상대의 목소리는 진중한 편이었고 카토그래퍼라 호명된 이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제 손을 쥐었다 펴며 잠시간 딴청을 부린다. 투입된 동료라니, 그런 기억은 없다. 기억하는 모든 것을 불라고 마련된 자리인데 사실 그에겐 혈압과 맥박이 어떻니 정맥주사로 뭘 놓아야 하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야가 잘려나가던 게 기억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집 주소나 제 올해 나이나 이름 같은 건 대답하면서도 자신의 직업이 뭔지 가족 구성원은 어땠는지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그는 몇 번의 질답과 정밀 검사를 거쳐 자신의 주치의라는 사람으로부터 심인성 요소 및 외부 요소로 인한 전생활건망증을 진단받았다. 제 특수했던 '직업'과 관련된 기억 전반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 또한 따라붙었다. 대외적인 진단에서는.

   “쉽지 않네요….”

   “예상한 일입니다.”

   그가 깨어난 후, 나름대로 기운을 차리고 제 기억이 멀쩡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체감할 때 즈음 누군가에게 콴 혹은 레온 콴런의 또다른 이름은 코드네임 ‘카토그래퍼’였다는 브리핑을 들었다. 23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주고 있는 데이터형 괴수를 막기 위해 투입된 작전에서 팀원들은 전사했고 그 순간을 목도한 본인만은 그나마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 당신이라는 말 역시 전임자들에게 귀에 박히도록 들어 왔다.

   자신이 그런 위험한 곳에 왜 들어갔냐는 질문에 돌아온 제가 갖고 있던 특수한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을 처음에는 이상한 취급했으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로 불려나온 한 남성 덕분에 빠르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가 실피드라는 코드네임에 알맞게 바람을 일으키며 넓은 병실 안을 헤집어 날아다닐 즈음에는 역시 제가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가, 제 몸도 둥실둥실 떠오르자 이게 제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복도 안을 날아다니게 할 것 같다는 직감 덕분이었다. 전임자들이 엄청나게 자랑한 대로 이 병실이 무척 안전하고 아늑한 것은 둘째 치고, 당장 성치 않은 몸으로 밖으로 나갔다 생기는 불상사를 책임지는 일은 사절이었으니까. 믿겠으니 일단 내려달라며 자리에서 버둥거리던 콴을 보던 그는 타고나기를 좀체 미워할 수 없는 사람처럼 덧니를 드러내며 웃더니 조만간 또 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긴 채 바람을 가르고 사라졌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기억의 상실이니 이능력이니 하는 말들을 허황된 것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와드리기 위해 제가 여기 있는 거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요.”

   "응…."

   그의 기억은 파편으로 흩어져 있었으며 때로는 그러쥘 수조차 없었지만 드문드문 두통이나 환청, 환상통 따위의 증세를 동반하며 기억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오롯이 제가 떠안아야할 고통을 감내하기를 싫어했으나 어떻게든 사건에 대한 증언을 하곤 했다. 이미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유로 집착하지 않기엔 기억의 너무 많은 부분이 사라졌을 뿐더러 일단 일전에 있던 업무상 그가 기억하지 못하면 많은 것들이 곤란해질 거라는 이유에서라도. 해서 뭐든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는 말에 나름대로 기억이 돌아오는 타이밍마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순순히 불어줬던 것 까지는 확실한데, 일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이 말을 번복했다느니 그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을 풀리지 않는 문제 다루듯 대하다가 자꾸 교체됐다. 사실 온통 낯설기만 한 공간에서 감히 시선을 들어 타인의 얼굴을 쳐다본 적도 없었고 무리한 몸을 강제로 이어붙이는 약물 때문에 온통 꿈 속에서 헤메이는 것 같을 뿐 그닥 실감은 나지 않았으나,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기분에 따른 향수 바리에이션을 자신 있게 맞출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현실이긴 했던 모양이다. 이 조직에 몸담은 약 15년의 세월을 떼어놓고 봐도 레온 콴런, 통칭 ‘콴’은 이런 고급스러운 향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리운 느낌에 알지도 못하는 어둡고 따뜻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눈빛을 해보이던 그는 잠시간 멍하니 앉아 있다 이명과 동시에 묘하게 저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잠깐 눈을 감았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둘, 고음의 목소리가 하나… 다른 파장의 음파를 헤어리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반가운 낯으로 말을 꺼냈다.

 

   “이, 임무에는 다섯 명이 투입됐어요. 저를…  빼고 말이에요.”

   “제가 말한 건 코드네임입니다.”

   “네에….”

   그러나 그게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라는 말이 돌아오자 콴은 또다시 주눅이 들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은 탓이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 잘못을 시인하라고 하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겠다만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을 회상하라고 닦달해대니 그 때마다 곤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모습을 가만 응시하는 듯 상대의 기척이 사그라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무적인 투로 방안을 울렸다. 여전히 잘 다듬은 얼음성같은 목소리였지만 방금 전에 비하면 다소 누그러진 투다.

   “하지만 다섯 명인 건 맞죠. 잘 기억해냈습니다.”

   "제가 여기서… 더 말해야 하는 거겠죠…?"

   "기억이 나는 한에서라면요."

   그 말에 가만 고민을 하던 콴은 한참을 눈을 굴렸다. 제가 했던 증언은 언제나 반복 혹은 번복되곤 했고, 눈 앞에 앉은 사람은 그 모든 이야기를 꿰고 있었다. 어쩌면 제가 증언했다는 사실도 가끔 잊는 자신보다 아는 게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단순한 직감이었지만 며칠 전부터 상담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가끔 병실에 꽃병을 갈아주러 오던 사람 덕분에 확신을 얻었다. 가슴팍에 달린 명찰대로 그린우드라고 호명하자 퍽 살가운 태도로 자신을 ‘리비’라고 부르면 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혼자서 많은 이야기를 재잘거리던 그 사람은 그를 무척 대단한 사람이라며 추켜세우고는 했는데, 자신의 얼마 되지 않았을 증언에서 다섯 번의 오류를 잡아낸 덕에 큰 도움이 되어서 상담까지 하게 된 거라는 말까지 했다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이전 이야기를 하는 건 폐가 된다며 상담가에 의해 내보내졌기 때문이다.

   ‘리비라는 사람이 나가면서도 웃었으니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웃었다고 확신하기엔 표정을 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들어올 때와 다를 바 없었이 명랑했으므로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제 상담가는 굳이 알고 있는 답을 원할 것 같은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 그를 곤란하게 했다. 자신 역시 진실이 뭔지 잘 몰랐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거나 번복해서 그를 곤혹에 빠트리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눈칫밥 먹는 일이 예사기는 했어도 그 역시 문제아 취급 받는 일이 썩 달갑지는 않았기에 긴 시간 자신과 함께해주는 사람에게 뭔가 좋은 것을 주거나… 못해도 잘 해주고 싶었다. 뭔가 기억해낸 게 있어서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줄 때면 종종 벽 너머에서 울리는 것 같은 환청을 주워들어 남의 일처럼 읊거나 두통을 감내하는 일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사무적인 정도의 호의를 보여주던 사람들은 곧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혀를 차고 문 밖으로 떠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에 종종 회의감이 들던 차였다. 그 탓인지 그는 제가 마음에 들어한 이 상담가도 언젠가 그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밤이면 그가 기억하지 못할 환청과 환상통에 시달리듯이.

   ‘… 잘 모르겠어, 내가…’

   “여왕님~!”

   깊은 번뇌를 치고 들어오듯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두 명분의 경쾌한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두 사람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발랄한 발걸음으로 병실 초입에 침범한 탓이다. 급작스러운 인기척에 잠깐 움찔했던 콴은 반쯤 본능적으로 제 상담가 쪽으로 흘깃 시선을 두었다. 표정을 살피기는 커녕 생김새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모든 것에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배어 있던 탓이다. 그게 아니어도 제 병실 안은 자신과 상담가 둘 뿐이었고, 아무리 직업에 관한 15년치의 기억을 잃었다지만 그런 권위적인 호칭은 자신에게는 죽어도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실피드, 그린우드. 내가 사정 모를 사람 앞에서는 오해 받을 호칭으로 부르지 말랬지.”

   “에이, 어차피 카토그래퍼 앞이잖아?”

   “그리고 여왕님은 여왕님이지!”

   이어 콴의 추측이 정확히 들어맞은 듯 짤막하게 한숨을 쉰 상담가가 시야의 끝에서 몸을 문 쪽으로 돌렸다. 짤막하게 제 코드네임이 ‘퀸’이라 몇 명에게는 이렇게 불린다는 설명을 덧붙인 그는 저를 찾아온 불청객들을 향해 다소 편안한 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카토그래퍼보다는 레온 콴런 씨로 부르는 게 맞을 걸. 아무튼… 왜?”

   “정보연구센터장님이 저번에… 어디더라, docoiastisin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재구성하고 있는데, 그때 팀 책임자가 여왕님이었던 것 같아서.”

   “저번에 본 현상이랑 비슷한 게 있어서 이미 겪어본 팀끼리 다같이 생각하면 좋을 것 같대.”

   “그래? … 금방 갈게.”

   먼저 가서 준비해 두겠다며 사라지는 인기척에 짤막하게 숨을 내쉰 콴은 상담가가 이 자리를 금방 떠날지 아닐지에 대해 고민했다. 아까 불쑥 들어왔던 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친근하게 굴어주는 사람도 아닌데 괜찮다고 느껴지는 유일한 사람을 떠나보내려니 바로 일어날 것처럼 굴던 그는 잠깐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기가 없는 사이 대화 상대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패드를 몇 번 두드리던 그는 올 사람은 ‘데이티’나 ‘레드’라고 불러주면 된다는 소개를 끝으로 잠깐 침묵한 후 금방 돌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안녕! 코드네임은 들었을 거고 미라라고 불러주면 돼.”

   “안녕하세요, 미라…. 어… 붕대는 어떻게 된 건가요?”

   얼마 가지 않아 다소 드라마틱하게 등장한 이의 활달한 톤의 인사에 잠깐 기가 눌렸던 콴은 주제를 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눈을 돌리다 그의 손발에 둘둘 말린 붕대를 발견했다. 어디 다쳤는데 자신 때문에 이곳까지 온 건 아닌지 다소 황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연신 꾸벅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상대를 바라보던 대담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 이거? 다친 건 아니고 능력 때문에 감아둔 거야. 난 불을 다루거든. 아, 이건 브리핑 못 받았으려나?”

   “그렇구나… 연소를 위한 거군요…. 잘 어울려요, 멋지네요. 저, 정말로.”

   “흠… 그래? 고마워! 네 손에 반지도 멋진걸!”

   “반지요…?”

   다소 기운 없는 칭찬도 성심성의껏 받아들인 건지 미라가 기운차게 웃으며 상대에게 덕담을 던졌다. 하지만 반지라니, 자기 손에 그런 게 있었던가? 고민하던 콴은 문득 제 양 손을 내려다봤다. 그의 말대로 왼손 약지에 덩그라니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제 손에 딱 맞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착오가 있어 다른 이의 반지를 낀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병실에 꽤나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의 손에 반지가 붙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다. 콴은 문득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병상 위의 그가 몸을 움츠리자 화들짝 놀란 미라는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제 볼을 몇 번 긁고 진정성 어린 목소리로 그에게 사과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됐는데…. 미안, 보스가 경 치기 전에 방금 말은 잊어줄래?”

   왜 그런 말을 들으면 안 되는지, 왜 겨우 반지에 대한 언급 하나로 제가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는지, 왜 이 사실을 말하면 안되는지에 대해 그는 어느 하나도 질문할 수 없었지만 그런 질문으로 괜히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이 한결 가시자 자세를 바로한 콴은 대담자와 나름대로 순탄하게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그와 헤어졌다. 곧 ‘보스’가 올 거니까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말로 그를 다독인 미라는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여기에서 콴이 그나마 호의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이자 친구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괴수며 폭주하는 이능력자들을 제압하고 세간의 시선을 피해 일상을 지켜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어떤 능력을 가져서 그들과 어떤 활약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지만 그는 제가 나름대로 쓸모있는 사람으로 큰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의 말을 기껍게 경청했다.

   ‘보스라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사람밖에 없겠지. 제가 기억하는 사람 중 그런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은 제 상담가 단 한 명 뿐이다. 그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멍하니 열리지 않는 문을 보다가, 제가 뭘 하는 건가 싶어서 도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도 자신의 동료였을까. 목소리는 언제고 사무적이었지만, 자신이 무의식중에 호의적인 사람만을 남긴다면 그 태도 역시 자신을 향한 나름대로의 환대였던 걸까. 그는 문득 제가 놓아버렸다던 감정과 기억을 답답하게 여겼다가, 그 사실을 놀랍게 생각했다. 서른 해 넘도록 그에게는 오로지 체념과 놓아버림, 그리고 포기만이 자신의 언어이지 않았던가?

   “늦었습니다.”

   되도록 공백이 없게 하려고 했는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불편한 점은 없었냐며 병상 앞쪽에 의자를 끌어다 앉는 그를 보던 콴은 어쩐지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지었다. 방금 전에 죽어라 사과하던 미라를 생각해서라도 두통 증세를 밝히지는 않는 것이 좋겠지. 붙여준 사람도 좋은 사람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어물쩍 말을 돌려댄 그는 제 손의 반지에 시선을 붙박은 채 손끝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상담가님도… 이전의 저를 아셨나요?”

   “네. 저희 조직에서 당신을 모르기는 힘들었죠.”

   “정말인가요? 그건… 좀 부끄럽네요.”

   “… 기억을 잃었어도 어디에서 부끄러운 건지 포인트 모를 사람이라는 건 똑같네요.”

   생각해보면 그와 일상적인 잡담은 반쯤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고저도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목소리에 짤막한 웃음기가 감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콴은 제가 왜 진작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던 걸까 고민했다. 자신의 팔 안쪽에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울타리 안에 저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 감각은 꽤나 기꺼운 종류의 것이다. 콴은 방황하는 사이 한 번쯤 쉬어가도 괜찮은 장소를 찾은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건 포만감이나 안정감에 가까운 만족이었다.

   “그러고보니 저, 오늘 저에 대해 알아낸 게 하나 있는데요….”

   “자리를 비운 사이에 뭔가 기억나셨나요?”

   “그건, 아니고 제 손에 반지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요. 문장을 끝맺지 못한 채 콴은 아까와도 비교 못할 극렬한 두통에 시달리며 머리통을 부여잡고 웅크렸다. 머리를 쪼개는 것 같은 이명과 사방의 벽에서 손톱으로 긁어내리며 쉰 소리로 제 이름이나 코드네임을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이 그를 괴롭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제발 사라져. 그를 이 지경으로 몰고온 나쁜 기억들이 숨통을 옭아맸다.

작전명리셋더데이터를위해코드네임카토그래퍼를주요멤버삼아여섯명으로구성된팀이결성되었다그들은지하3층의서버실로내려가데이터일부를파훼한힘으로실체화한괴수와싸웠다그들은지하4층으로몰아가며그를핀치로몰았으나방어형이능력자의상실으로급작스럽게열세에몰렸다지하5층에서는공격형과후방지원형능력자를잃었고레온콴런이서포팅후지원요청을하는사이방어형이능력자한명을더잃었다후방에남았던치유능력자는이능력을견디지못하고폭주하여괴수에게일격을가하고죽었다모두가죽어버렸다오로지레온콴런당신만을제외하고유아저머리가너무아파요그만회상하고싶은데그렇게하면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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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이 드십니까?”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감각에 무언가 소리지르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누군가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둔 것 같은 기분에 마른세수를 하던 콴은 상담자에게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창 밖을 바라보았다.

   사위가 어둡도록 조성된 방은 커튼 하나 쳐지지 않았는데 늘 적당히 낮은 채도를 유지했다. 생각해보면 그런데도 언제나 창 밖은 푸른 하늘이 유지되고 있었다. 기절할 때 뿐만 아니고 눈을 뜨고 있건 잠을 자려고 하건 늘 이런… 이런 푸른 하늘을 보았던 것 같은데. 문득 이 장소가 어디인지 궁금해진 콴은 통제를 잃어버린 것 같은 손끝에 가까스로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상담가님, 저…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요?”

   “숨기시는 게 없다면 저야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이 방에 대해 질문하려고 하던 콴은 잠시 그 질문을 보류하기로 했다. 첫째로는 온통 기억이 섞여 무엇이 제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를 겪고 나자 문득 떠오르는 질문거리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어쩐지 그렇게 아픈 직후인 지금이라면 그 질문을 말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저를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말하시기 전까진 판단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저… 밤이면 누군가 방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고해가 들어왔다는 듯 말하는 데에 단 한 순간도 거리낌 없던 그의 태도에 잠깐 정지 신호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말을 해야 상대가 안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처럼 짤막한 침묵을 택했다.

 

   “… 접니다. 당신의 주치의 겸 상관이거든요.”

 

   이내 언제 그러했냐는 듯 깔끔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대답에 제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한 콴이 제 손을 가지런하게 모았다. 시선을 내리깐 채 이불을 꼼지락거리던 그는 다시금 입을 연다.

 

   “종종… 누군가 제 손을 잡아주는 기분이 들고요….”

   “그것도 접니다. 당신의 친구였거든요.”

 

   이번에는 평소의 태도로 대답이 돌아왔다. 콴은 그의 태도에 안도했다. 이런 사람과 친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를 쌓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다. 혹은 이유 모르도록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라 보물찾기에서 일등상을 찾은 사람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다행이네요. 저도… 당신의 친구였구나.”

   “모르시겠지만 제가 15년동안 신세를 지긴 했죠. … 이외 증세는 없으신 겁니까?”

   “그게… 이게 제일 이상한 건데요.”

   “방 안에서 뭔가 더 느껴지는 것 같나요?”

   “가끔가다가, 벽 너머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요.”

   “그건….”

 

   상담가는 입을 닫았다. 콴은 선험적으로, 혹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경험에 기대어 그가 첫 질문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단어를 고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상담가는 언제나 자신이 해야할 말이 어떤 것인지 알았고 자신이 어떻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만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함께 있다고 해도 살갑게 말을 붙여오지는 않아 콴은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하는 침묵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터였다. 그런 그가 고민을 하는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고 지금이 두 번째다.

   그래서 콴은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이 저를 배려해주려고 숨긴 비밀을 제가 직면했다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콴은 말을 물리거나 이불을 내팽겨치고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구태여 이게 이상하다던가 자신이 약물 때문에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로 상황을 희석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도, 접니다.”

 

   돌아오는 대답에 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상대의 표정을 보기 위해 두려운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는 사이 그의 시야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왔다. 자신과 정확히 같은 디자인의, 단순히 크기만 다를 반지 하나.

 

   “당신의 배우자였거든요.”

 

   이상형이랑 멀어서 놀랐어요? 그건 유감이군요. 담담하게 말을 내어뱉는 이는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친 사람은 화려함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인간의 배색으로도 구현할 수 있을지 신이 실험을 한 사람 같았다. 길다란 검은 머리와 푸른 눈, 오른쪽 눈 아래의 점이라는 단순한 구성이 숨막히게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바늘 끝도 들어갈 틈 없는 것 같은 철과 얼음으로 빚은 요새의 현신과도 같은 표정을 짓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페이스를 잃었다. 기다란 속눈썹 끝에는 지금의 콴으로서는 읽어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매달렸다.

   우리에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눈을 크게 뜬 콴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언어가 재정립되는 사이 상담자는 브리핑을 하듯 담담하게 제가 한 일을 말했다. 자신을 어떤 형태로건 소개할 때마다 당신에게는 발작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냥 자신을 궁금해 할 때까지 오롯이 기다렸노라고. 아무리 답답해도 당신이 아픈 것 보다는 그게 나을 것이었다는 말이 더없는 혼란을 가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 줬는데.’

 

   단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궁금해할 여력을 얼굴을 살펴보면 자신을 경멸하고 있을까 봐, 표정을 읽히면 멀어질까봐 시선을 피하는 데에 쓰기 바빴다. 그는 왜 자신이 그랬을지 조용히 자책하면서 시트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면목이 없어 시선을 내린 이에게 부드럽게 말이 이어진다. 괜찮습니다, 하고.

 

   “전 원래 그런 사람이고, 그건 당신이 제일 잘 알았을 거니까요.”

 

   이제라도 자신을 봐주었으니 다행이지 않겠냐는 말을 덤덤히 붙인 그는 조용히 그의 손 위로 제 오른손을 올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콴은 그의 손등을 유리세공품처럼 소중히 매만지다 적막을 깨기 위해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름이 뭐예요?”

   “유아. 성은 버렸어요. 이유는 당신이 떠올릴 수 있겠죠.”

   “… 저도 소중한 사람이 생겼군요.”

 

   문득 시선을 돌린 창 밖에서는 바깥 풍경에 금이 갔다. 깨진 틈새 사이로는 서버실 같은 곳이 보였다. 저거 보여요? 제가 저기 있었나요? 물어보려던 콴은 문득 제 손 안의 손이 조금 줄어든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 유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건 모르겠지만, 난 널 소중히 여기는 게 맞아.”

 

   다소 앳된 얼굴을 한 유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의 대답을 받았다. 콴은 이 공간이 어떻게 되어먹었는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 병실만은 현실이라고 믿었는데 부정당했다. 전임자들도, 자신을 띄워주던 실피드도, 꽃을 갈아주던 그린우드도, 반지를 칭찬해준 데이티도, 종내에는 자신의 손을 잡아준 유아마저 현실이 아니라면 그는 어느 곳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여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그는 숫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여, 여긴 어디에요?”

   “여기?”

 

   눈을 깜빡인 유아는 이곳을 언젠가 그가 전임자들로부터 들었던 것처럼 ‘위험한 것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전한 방’이라고 이야기했다. 콴이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이자 크리쳐를 마주한 후 현실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콴이 일종의 방어기제로 만든 방이고, 병실과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복도의 일부만이 이곳의 전부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그는 아까에 비해 제법 건방지고 당차보였다. 이게 자신이 보았던 어렸을 때의 성격인지, 단순히 제 취향이 이랬던 건지 고민에 빠진 콴은 이왕 멍청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거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듯 제가 할 말을 이었다.

 

   “그럼… 유아도 가짜고, 내가 만들어낸 허상…인가요? 내… 친구들도…?”

   “유아라는 사람이 실제 사람인 것도, 배우자인 것도 맞아. 내가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되어 있는 존재일 뿐이고….”

 

   바깥에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네가 아니까, 내가 여기 있었던 것 뿐이야. 당연한 것을 말하는 모양새로 발장난을 치는 그던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반으로 묶은 양갈래가 무게중심을 따라 기우뚱하는 것을 보던 콴은 문득 열린 문과 창 너머를 바라본다. 간사하게도 그냥 일어나서 커튼을 치고 문을 닫으면, 적어도 유아에게 부탁하기만 하면 이 방 안에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가면?

 

   “깨어날 거야.”

 

   머릿속을 읽은 듯 불퉁한 투로 대답한 유아는 콴의 시선이 닿았던 복도의 문을 바라본다. 네가 생각한 직감도 아마 맞을 거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네가 원하는 걸 하라는 듯 시선을 도로 돌리며 오만하게 고개 각도를 틀어 그를 쳐다본 그는 부연설명을 이어나간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너만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생기겠지.”

   “응…….”

 

   짤막한 고민을 거치던 그는 조용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오랜 기간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보다는 단순히 침대에서 느적거리던 사람처럼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중심을 잡은 그는 굳이 오랜 기간동안 인내심을 갖고 저를 기다려준-아마 현실에서도 그러고 있을- 제 배우자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짙은 눈썹을 누그러트리며 웃는다.

    

   “솔직히… 잘 할 자신은 없지만, 유아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돌아갈래요.”

   “잘했어. 걔네도 네 선택을 좋아할 거야.”

   “복도 끝까지만 데려다 줄래요?”

   “원한다면.”

 

   고개를 끄덕인 유아는 콴을 데리고 복도의 끝으로 나선다. 그러나 길잡이의 역할을 할 뿐 그에게 조금 더 천천히 가라거나, 빠르게 걸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짧은 복도를 함께 산책한 둘은 최첨단 시설에는 맞지 않는 조악한 나무문 하나를 앞에 두고 천천히 손을 놓는다.

 

   “이 문고리를 잡고 열면 돼. 쉽지?”

   “잠깐만, 유아…. 이런 상황이 오면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뭔데?”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다 아무도 없는 복도 끝을 향해 시선을 돌린 그는 어린 길잡이에게 양해를 구한 후, 사뭇 과장된 태도로 구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처럼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을 외쳤다. 뒤이어 어이없다는 표정의 유아를 보고 머쓱한 얼굴로 웃어보인 그는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리는 없으니까 여기에서라도 하고 싶었다고 변명했다.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던 유아는 천천히 손을 놓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이제 됐어?”

   ”응, 혼자만의 추억은 생긴 것 같아….”

   “그럼 됐어. 음… 잘 가. 밖에 나가면 나한테 잘 해주고.”

 

   부스스 웃는 얼굴로 그것만은 노력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십대 초반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아이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자 그가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환대에 가까운 배웅을 받으며 문고리를 돌리는 손아귀에는 이제 나름대로 힘이 들어갔다.

 

   몇 걸음 나아가지 않아 콴은 제 온 몸이 빛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온통 다정한 빛 속에서 천천히 그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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