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dy day
사선에서 행해지는 비상은 덧없는 투신과 같다. 그러나 마리웨일 에리카 블루버드는 마치 혼에 새겨진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 손에 창 한 자루만 쥐어든 채 죽음으로 뛰어든다. 그는 고독하여도 좋으니 지상에 붙박혀 있어 달라는 간원으로 부모의 성 대신 미들네임에 피어난 히스꽃의 이름마저 지상에 두고 땅을 박차오른다. 그에게 비상이란 일종의 운명의 물살과 같은 탓이다.
“가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사위가 어지럽고 비명으로 가득 찬 가운데, 그는 그래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처럼 대피하는 인원을 거슬러 마수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차마 그 역행을 잡지 못한 교수나 학우들의 입에서는 안전장치 하나 없이 첨탑에서 땅으로 낙하하는 사람을 본 것처럼 비명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마리웨일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 아닌 바다 저 너머로의 향수를 느껴 날아가는 바다새의 날갯짓으로 여겼다. 단순히 때가 되었기에 익숙했던 땅을 등지는 것 그 이상의 이하도 아닌 것들.
*
시절은 삼월이요 계절은 봄이다. 전 대륙을 아우르는 교육 기관 에덴에서는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졸업 시험을 무사히 치른 이들을 치하하고자 연 이틀에 걸쳐 프롬 파티를 연 참이었다. 고용된 전문가들의 지휘 하에 재학생들 하며 졸업생들이나 교수까지 손을 거들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꾸며진 연회장은 작년의 여름 축제 이후로 더없는 활기를 되찾았다.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샹들리에도 새하얀 테이블보 위에 딱 적당한 만큼만 올려져 있던 파티 음식들도 그를 위한 은식기에도 무엇 하나 사람들의 관심이 배이지 않은 것이 없어 즐거운 시간이 예고되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학장의 예고대로 마법으로 홀로 조율을 이어가던 악기들이 경쾌한 서곡을 연주하면, 개성 넘치게 꾸민 학생들이 연회장 근처에 깔린 카페트를 밟지 않으려 다분히 애쓰며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연주의 흐름에 따라 졸업생들이 입장하고 그들의 첫 춤을 구경한 후 본격적으로 파티를 시작하는 관례를 모르는 이가 없던 탓도 있었고, 매년 낙오나 부상이 생기는 에덴의 시험을 전원 무사 통과한 졸업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반이 맨 앞에 있을 거니까 여기가 명당이겠지?”
“그렇네요, 이반 님도 졸업생 대표일 테니까요.”
개중 특이사항을 꼽으라면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졸업생들을 기다리는 재학생의 행렬에서 까치발을 들다 못해 바람을 타고 공중에 붕 떠있는 세레니티와, 그를 구태여 저지하지 않은 채 방긋 웃는 낯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리웨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다시피 커온 덕에 황녀나 백작 영애같은 무거운 칭호보다는 친한 사촌동생 쯤으로 둘을 여기던 이반이 졸업 시험을 위해 군장을 꾸리며 몸 성히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떠난 후 처음 재회다. 기다림을 함께 해준 친우의 목소리에 배어나는 웃음기로 사고로 시야를 잃기 전 어린날의 기억을 되살려 그의 미소를 상기한 마리웨일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며 황녀가 손수 빗을 들어 모양을 내어준 분홍빛 머리칼을 괜히 매만졌다.
“졸업생 입장.”
왁자지껄하게 저마다의 프롬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던 장내는 졸업반의 입장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오자 대번 조용해졌다.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빛을 등지고 주단 위로 제각각의 발소리가 들리며 졸업생들이 들어왔다. 외부와의 연락을 금한 채 꼬박 하루의 휴식을 취했음에도 채 떨쳐내지 못한 미묘한 피로감과 큰 산 하나를 넘었다는 성취감이 교차하는 어린 얼굴들에는 이내 익숙한 사람들을 향한 반가움과 안도감이 서렸다. 자신의 힘으로 시련을 극복해낸 이들의 얼굴에는 떠나기 전에 비해 미묘한 어른스러움이 감돌았으나, 모든 인원이 들어오고 다시 문이 닫히기 전까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규칙으로 인해 다시 만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반가움을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숨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으므로 표정으로만 방긋방긋 의사표현이 지나간다.
“에덴의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여느 또래와 같은 모습을 인자하게 지켜보던 에덴의 총장이 마지막 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후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순간에 대한 짤막한 회상을 홀로 거치는 듯 하더니 부드러운 얼굴로 웃어보였다. 이 순간을 기다렸을 사람들에게 긴 축사가 얼마나 고통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접은 그는 짤막하게 문을 닫을 것을 손으로 지시하며 간결하게 뒤로 물러났다.
“전원 박수.”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려퍼진다. 그제서야 자신들을 향한 환대에 반가움의 표시로 환하게 웃거나 손을 흔들던 졸업생들은 그 기세가 수그러듦과 동시에 어색하지 않은 타이밍에 끼어든 학장의 말에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이례적인 쾌거로 하루종일 웃고 다닌 덕에 학생들이 프롬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데 도움을 준 그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목소리에 배어난 웃음은 자신의 자랑이자 에덴의 자랑이 된 졸업생들로 방향을 잡는다.
“여러분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파티의 주인공은 여러분들이므로, 부디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후 대륙을 짊어질 인재라느니 하는 진중한 말은 졸업식에서 하자며 짐짓 너스레를 떤 그가 악기에 간단한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손짓에 경쾌한 음이 울려퍼지고 하나둘 짝지어 춤추는 졸업생들 사이로 유유히 한 사람이 걸어나와 재학생 사이로 스며들었다. 입장 당시 가장 선두에 서있던 이반 레인 스카이필드였다.
“어, 이반은 춤 안 추게?”
“나는 너와 달리 파트너가 없어서 말이지.”
“이, 이반 님…!”
“농담이다. 그간 잘 지냈나.”
익숙한 무던한 조의 농에 꺄르르 웃음을 터트린 세레니티가 이반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러게 2년만 늦게 태어나주지 그랬느냐는 소리에 눈썹을 누그러트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후에야 잔을 받아들은 이반은 회장을 향해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무슨 장난을 치려 궁리하는 건 아닐까 잠깐 고민하던 마리웨일은 금방 그런 생각을 접었다. 그의 장난은 짓궂을 때가 있지만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정도는 아니기도 했고, 휘말리기 싫은 마음보다는 반가움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세레니티의 웃음에 전염된 마냥 부스스 웃는 친우의 머리를 마저 쓰다듬은 이반이 샴페인을 홀짝였다.
“난 에디나 비비가 이반이랑 춤 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비안은 가당찮은 소리라고 넘길 거고… 에드워드는 그 말 들으면 울겠군. 파티가 끝나면 사과하도록.”
“하지만 에드워드 님이 세레니티 님 때문에 울기엔… 이반 님이 들어오는 파트너 신청을 에드워드 님을 방패삼아 빠져나가셨잖아요….”
“그랬던가?”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친구들로 시선을 넘기던 이반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중 몇몇은 프롬 파티에서는 같은 학년 내에서만 파트너가 가능하다는 핑계로 그에게 들이댔다가 요령 좋게 빠져나간 그가 아예 파트너까지 결성시켜 줘서 손을 맞잡고 있을 것이다. 아마 에드워드도 그걸 원했을 거라며 그의 고개가 원위치됨에 따라 밤바다를 닮은 머리칼과 함께 귀걸이에 달린 비단 천이 나풀거렸다. 이반은 적당히 장난스럽고 적당히 고고한 사람이었으며 나름대로 자비로웠지만 자신의 선만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에드워드 앨버트 던워커와 같이 졸업 시험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울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검술부의 실력자라던가 대공이라는 지위 뿐만 아니어도 사람들을 끌어당길만한 사유는 많았으나, 그의 선을 함락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웨일은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유추했으나 거기까지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언급된 사유로 이반과 동급생인 제 연인과 파트너가 되지 못한 세레니티가 동일한 처지인 제게 프롬파티 파트너 신청을 한 것을 이반이 가장 지근거리에서 똑똑히 지켜본 탓이 컸다.
사실 마리웨일은 그 때 받은 주목을 생각하면 제게 그만큼의 노고를 쏟아준 세레니티의 우정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어쩐지 부끄러웠다. 친구끼리 파티에 입장하는 게 뭐 어떻냐는 당연한 발상에서 튀어나왔다지만 그냥 예의상 지나가는 말처럼 해도 될 행사를 전교생이 다 볼 것 같은 자리에서 화려하게 저질러준 세레니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권력을 내려놓고 공화정의 형태로 차츰 변해가도록 노력하는 황가 덕에 황녀라고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계야 거의 없었다만 황가의 부유함은 별개의 일이었기에 나름 남부에서 제법 잘 나가는 백작 가문의 영애라는 자신조차 입이 벌어지는 이벤트들이 휙휙 지나간 다음에야 프롬포즈는 끝이 났고 그는 짧지만 가볍지 않은 고민을 거쳐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이나 비비안이 몇 년은 두고 회자할 거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그랬다.
“마리.”
“네, 세레니티 님.”
그는 제 오랜 친구인 세레니티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같이 모이니까 좋다, 그렇지?”
영민한 그는 황녀가 굳이 저와 연회장의 인공 하늘을 날아 함께 기둥에 리본을 다는 잡무에 참여한 이유를 설핏 깨우쳤다. 손끝에 매만져지는 리본의 촉감과 기둥에 매듭지어지는 감각을 통해 이해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사람이 둘이면 빠르게 일이 끝날 거라는 말 말고는 끝끝내 어떤 표현도 하지 않는 친구를 저버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곤란한 척 하면서도 함께 입장하자는 이야기도 다같이 옷을 맞추자는 제안도 고개를 끄덕여 결국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반이 자기는 연인도 프롬 파트너도 없는데 이렇게 끼어도 되냐는 농을 하면서도 제안을 받아들여 준 것처럼.
“네, 그렇네요.”
그래서 마리웨일은 결국 이 상황을 그냥 즐기기로 한다.
*
찬란한 빛 아래 평화로운 풍경은 타성에 젖은 꼴이나 마찬가지다. 오래토록 지속된 번영으로 인한 자신감은 종종 방만과 태만을 낳는다. 그리하여 어떠한 사소한 잘못과 우연으로 인하여 재앙이 일어나는 일 역시 생긴다.
몇 년이고 갈고닦은 감으로 어떤 터무니없는 불운의 서곡을 느낀 이들 몇몇이 일을 멈추었다. 얼마 가지 않아 건물이 크게 흔들리자 장내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대리석 바닥과 두꺼운 주단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나온 검은 빛의 균열이 내부를 압도했다.
“저… 저게 뭐야…?”
몇몇 학생은 파편에 맞아 피를 흘렸고 심한 경우는 간단한 방어 마법조차 펼쳐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기절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제 고통보다도 눈 앞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몸에 긴장을 주고 있을 때, 균열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불안을 집어먹는 마냥 느긋하게 제 몸집을 키운다. 불규칙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균열의 안쪽에서는 희미하게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물이다.’
‘포탈.’
나이가 지긋한 교수들 하며 졸업 시험의 일환으로 외지의 마물을 토벌하러 떠났던 검술부와 전술 마법부의 사람들의 경험이 거대한 적색 경보 속에서 정확한 이유를 도출해냈다. 소름끼치도록 낮고 높게 그르릉거리는 소리, 미묘하게 배어나오는 비릿한 피냄새, 거대 전쟁 이래로 빛 아래에 있어야 하지 않을 것들의 일렁임… 마물이 나올 때면 으레 경종을 울리는 일종의 생존 본능. 잔당이나 후손이 아닌 마물들이 지금의 세계를 탐하여 건너온다는 증거, 포탈이었다.
“전투는 안 됩니다, 부상 인원이 있습니다!”
“대피 후에 일시적으로 봉인 마법을 걸겠습니다. 비전투 인원은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전투 인원은 최대한 빠르게 자기 무기를 챙겨서 모입니다!”
“에드워드, 거기 부상자 셋을 옮겨주게. 부탁하네!”
당황함은 마찬가지였으나 온통 기세가 눌려 있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학장의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운다. 평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맨손이던 사람들은 우선 균열이 완성되기 전 부상자를 부축하여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대한 문이 급작스레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며 안의 후덥지근하던 공기가 바람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사이 세레니티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사이 홀연히 서있는 마리웨일이 문득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시야 사이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바람과 균열에서 빠져나오는 불길한 공기 사이로 어떠한 기류를 느낀 것처럼.
“마리?”
“세레니티 님.”
그래서 그는 저들을 일순위로 생각하는 교수의 대피령과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이 장소를 떠다는 사람들의 물살을 거슬러 비상한다. 단순히 예식용 이상도 이하도 아닐 갑주에 들려진 검을 빼어 들고서는 이미 바람을 타 날갯짓조차 불필요한 새처럼 평온한 투로 저를 호명하는 친우를 향해 흩어질 것처럼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가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뒤를 돌아 균열에 뛰어든다. 교수들이 차마 그를 제지하지 못한 사이 가장 처음 떠밀려 나오던 마물 셋의 목이 단숨에 잘렸다. 세레니티는 이 순간이 언젠가 올 것을 예상한 사람처럼 그 순간을 가만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를 부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친구의 비상을 바라보던 세레니티는 짤막하게 뒤를 부탁한다며 장식품인 양 벽에 걸어뒀던 제 활을 꺼내들더니 입구 대신 친우를 향해 재빠르게 내달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가로질러 바람을 타고 살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마력을 모아 응축하여 화살처럼 단숨에 급소를 꿰뚫는 사이 뒷쪽에서 오는 익숙한 기운에 검기를 실어 창으로 마물을 내리치던 마리웨일의 얼굴에는 또 한 번 짤막한 미소와 감사함이 걸린다.
“세레니티 님은 여기 안 계셔도 됐는데.”
“아냐, 난 무기가 있잖아. 셋이서 조금이라도 줄여두면 뒤에 올 사람들도 편해지겠지.”
“셋이요?”
의아함을 가득 담은 잿빛 시야 사이로 한 명 분의 인영이 날아들었다. 그럴 상황이 아님을 알면서도 익숙한 바람결에 무심코 안심되는 듯 웃은 그가 거슬릴 일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칼을 정리하며 바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름을 호명하기도 전에 주인이 입을 연다.
“가족을 만나기 전에 며칠은 쉬고 싶었는데 말이지.”
짤막하게 한숨을 쉬며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어 검기를 날린 이반이 어느새 회장을 꾸역꾸역 채운 마물을 가르고 둘의 등을 맡았다. 아무래도 이 일이 끝나면 몸 편할 날 없을 것 같다며 여유를 보이던 그는 문으로 달려들던 비행체를 단숨에 잘라내며 제 검을 든 손목을 빙빙 돌린다. 이런 일은 익숙하다는 투였다.
바깥에서 봉인 마법이 걸리는 소리를 확인한 그는 못말리는 두 동생들을 바라보더니 자신은 할 도리나 하러 온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는 듯 가만 어깨를 으쓱인다. 단순히 대련을 앞에 둔 사람처럼 평온하게 자세를 잡은 셋의 시선이 교차했다. 바람의 파장을 갖고 태어난 사람끼리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잔소리를 들을 예정이니 비비안이나 에드워드한테는 너희가 설명하거라.”
“당연하죠, 이반 님.”
“음, 이반이 예식용 검인 척 하고 진검 들고 있던 건 설명 못 해주겠지만.”
“… 그건… 내가 힘내보지.”
쏟아지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도 평이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소짓던 이들이 괴이들이 일제히 달려듦과 동시에 출발 신호 없이 거세게 땅을 박차올랐다. 그 여파로 거센 돌풍이 일어나 전쟁의 서막을 알리듯 연회장의 문이 굳게 닫혔다.
누구를 사라지게 할 지 모르는 바람 속에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