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날한시의 타인
오늘은 집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제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수십 번의 루프 끝에 윤성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윤세하는 자신의 눈앞에서만 죽는다.* 반대로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죽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만약 윤성하가 이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가지 않겠다. 그 생각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휴대전화로 몸이 좋지 않아 쉬겠다고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둔 채로 몸에 힘을 뺐다. 반복되는 시간에 지친 그는 쉽게 잠이 들었다.
문득, 지금이 몇 시인 걸까.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휴대전화를 보니 알람이 아니라 전화였다. 영상 통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윤세하였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언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손가락은 착실하게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도 켜지 않은 휴대전화에서는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익숙한 소리, 비명, 목소리, 윤성하는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루프다.
*
그 이후로 윤성하는 몇 번이고 더 실험했다. 자신만 사라지면 이 루프가 끝나지 않을까. 적어도 그녀가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한 번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연락이 되지 않은 부모님이 나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외식을 나갔다. 공사 중인 건물 철근이 떨어지며 사망. 같은 공간에 있지 않기 위해 무작정 멀리 도망쳤다. 걱정된 윤세하가 따라 나오다 배달 오토바이에 치여 사망. 이번엔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척 나가보았다. 우연히 번화가에서 다시 만나면서…. 독서실에 간다는 명목하에 휴대전화를 끄고 외출…윤세하가 있던 건물이 화재로…가스가 폭발…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장롱이 넘어지면서… ….
… 죽는 건, 이런 느낌일까. 시야가 몇 번이고 흐려지는 감각 속에서 윤세하가 느꼈을 감각을 추측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죽음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 윤성하는 몇 번이고 책상에 엎어져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는 빈 종이에 해보았던 모든 가능성을 다시 써넣었다. 처음에는 오분이면 끝났던 이 행위는 어느덧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고민도 오탈자도 없이 써 내려가는 행위와 결과에 펜을 내려놓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윤성하가 어디에 있든 윤세하의 죽음은 그를 직접 찾아왔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을 끌고 와서라도. 그는 의자에 눕듯이 등을 기댔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곤했다. 몸은 쌩쌩하지만, 정신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너덜거렸다. 커피가 필요했다. 집에 있는 싸구려 인스턴트라도 좋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방문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금 집에 있는 것은 자신을 제외하면 윤세하 뿐이었다.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뭐 잘 못 먹었냐? 설마 사고 쳤어?”
“아니거든?!”
“그럼 왜 손을 흔드는데”
그녀가 눈을 피했다. 명백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이다음에 나오는 것은 거짓말이다. 오랜 세월 그녀를 보아온 만큼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점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난다는 걸 알고 있는지 잠시 주춤거리다 얕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조금. 오랜만인 것 같아서?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미쳤나. 순간 그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까지 자던 녀석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도 이해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었지만. 세하는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성하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 상황도, 윤세하의 설명도, 행동도. 전부. 무언가가 이상했다.
“그래서, 뭔가, 응. 미안. 이상한 꿈이라도 꿔서 그런가 봐.”
“… 뭔, 꿈인데.”
평소 같았으면 헛소리할 거면 세수해서 잠을 깨거나 돌아가서 더 자라고 말했을 자신이 반대로 물어보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잘 모르겠는데… 뭔가 어디를 가다가? 아마 이 동네 같은데… ”
이 루프 사이에 성하는 몰라도 세하가 동네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너를 보았는데,”
너는 항상 내 앞에서 죽었다.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고. …음, 뭔가 아파야 할 것 같은데 안 아파서 좀 신기했어!”
꿈에서까지 아플 필요는 없잖아 멍청아.
“그리고, 네가, 날 보는데 말이야.”
…
“엄청, 뭐라고 해야 할까. 엄청 안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울 것, 같이 보였다고 할까.”
…
“아무튼, 뭔가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 거야. 방해했네. 뭐, 응. 피곤한 것 같은데 쉬어. 아무것도 아니야.”
…
윤세하는 어설프게 웃다가 내 방에서 나가 거실에 들어갔다. 나는 문을 닫을 생각도 못 하고 조용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돌아버릴 것 같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었다. 이 루프 사이에서 윤세하를 보며 절실히 실감했다. 짓눌린 살점과 내 뺨에 튀는 피를 보며 생각했다. 무언가의 죄를 통해 내가 지옥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 언제나 선하게 살아온 네가 이 지옥에 발을 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하는 광인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기이한 행동에 윤세하가 그의 방을 찾았다. 평소라면 그녀 또한 무슨 일이냐며, 혹시 머리가 아프냐고 장난을 겸한 시비를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순간 성하의 모습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몇 번이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윤성하, 너 괜찮아? 괜찮은 거 맞아? 성하는 차마 내뱉지 못 할 말은 삼켰다. 난 괜찮지 않아. 근데 넌 더 괜찮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