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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a live

   어느 절지동물처럼 사냥용 침을 내뱉는 괴수에 로제르트는 치를 떨었다. 한줄기 끈 같이 생긴 그 생물에게 얼마나 많은 행성이 집어 삼켜졌는지는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 그리고 로제르트와 레비 같은 오퍼레이터들 또한 알아내기를 거부한 문제이다.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끈적한 물질을 뛰어넘은 로제르트는 한 번을 돌아보지 않는 야박한 파트너의 뒤를 쫓으며, 그나마 평온했던 한때를 회상했다. 마냥 평화로웠기보다는, 목전에 드리운 그늘을 둘이 알아채지 못한 것에 가깝기는 했다. 그래도 그 때에 마셨던 커피 한 잔이 지금에 너무나도 고팠다. 커피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기왕이면 홍차가 좋겠다. 사실은, 지금이라면 레비의 구박마저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물을 타지 않은 듯이 진한 쓴맛이 입안에 감돈다. 노랗게 변색 되어 끝이 부스러질 것 같은 오래된 신문지를 내려놓은 레비는 그 순간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머그잔을 앞으로 끌었다. 그리고 안쪽에 내용물을 들여 보았다. 새카만 액체 속의 그의 얼굴만이 언뜻 비친다. 미간 새가 약간 찌푸려진 낯. 쌉쌀하고 그윽한 커피의 향이 맴돌며, 입맛을 돋우고 왔지만, 그도 그 안에 든 액체의 맛을 잘 모를 때나 통하는 것이다.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통을 뒤집어, 각설탕을 하나 정도 넣어 저었다. 부드럽고 천천히 녹아든다. 레비는 그를 지켜보다, 그와 엇비슷한 속도로 입을 떼었다.
   
   “그래서, 그쪽 탓이 아니다?”
   
   그 쓴 커피를 잘도 마시는, 이 말을 금세 정정하게 되었다. 쓴 것은 괜찮지만, 뜨거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악마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거운 이 커피에 그도 당해버린 모양이다. 금방 입을 데어 혀를 내 빼물고 있는 치를 목격한, 레비는 혀를 한 번 찬다. 그러면 상대방, 로제르트 아르테미오는 컵 윗부분을 잡아 적당한 곳에 내려두며 억울함을 가득 담아 목청 높여 소리치는 것이다. 어느 쪽의 억울함에 대해 토로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 뜨뜨, 그야, 당연하지. 교체 시기로부터 일주일밖에 안 지난 건 너도 잘 알잖아?”
   
   “이대로라면, 굶어 죽는 것보다 숨을 못 쉬어 죽는 것이 빠르겠군.”
   
   “저기? 애초에, 나 혼자 정비한 것도 아니고.”
   
   “어디에 꽃이라도 더 심어야 하나 모르겠어. 남은 종자가 있던가? 수소를 약간의 산소로 바꾸어서라도, 우리가 숨이라도 쉬어야 하지 않겠나.”
   
   아닌 때, 이른 아침부터 그들이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열띤 대화를 이어가는 데에는 나름대로 심각한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일상적인 만담을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렴. 이래 보여도 저들 나름대로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것이 어언 연유냐 하며는, 최근 들어 기체 내부에 퀴퀴한 냄새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혹자는 그 하나를 두고 사소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주라는 공간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녹록한 곳이 아니다. 숨을 한 번 내쉬는 데에도, 아주 많은 기술이 적용되어야만 했다. 그러니, 이 작은 변화 하나까지도 우주인인 두 사람이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신호가 됐다. 내부의 공기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이 무엇이겠나. 크게는 기체의 위급한 고장이겠으며, 작게는 어느 부품이 마모되었다는 정도겠으나, 어떤 점이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 둘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지난 주차에는 식량의 관리부실 문제가 발생했었는데 단백질 큐브가 일전 체크 해두었던 수량에 한참이나 미달하는 것을 로제르트가 발견해버렸다. 이것은 지금 그들이 바삐 NEP - 248 지대로 향하는 이유가 된다. 참고로 덧붙여 말하자면, 이 담당은 레비였는데 오랜만에 건수를 잡은 로제르트는 하루 내리 그에 대해 언급하며 레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도 했다. 당시 신이 났던 로제르트가 제 기분에 정신이 팔려 고려하지 못한 것은, 그의 파트너가 은근히 속이 좁았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때의 일이 지금 로제르트를 열렬하게 못살게 굴고 있는 레비의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내려놓은 커피가 식어 미적지근해져 갈 때쯤, 퓨즈가 깜빡이며 금방이라도 생을 다 할 것처럼 점멸했다. 그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소리를 대신하여, 서로가 내뱉는 일산화탄소가 공간을 메워 갈 때, 입술 위에 눌어붙은 침이 마르기 전, 먼저 구순을 떼어낸 것은 로제르트의 쪽이었다. 억눌렸던 목소리가 가다듬어지지 못한 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 ... ... 저기, 레비. 거기 있어?”
   
   “없다만.”
   
   “이럴 때까지 장난치는 게 너답기는 하다.”
   
   “알기 쉬운 사람이 된 기분이라 그렇게 좋지는 않아.”
   
   다행히도, 시간을 잊을 정도로 그 사태가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다. 원추세포가 제 할 일을 해 암순응이 발생하기 전, 직전과 같이 깜빡임을 일던 것이 다시 제 빛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그나저나, 눈에 띄는 이상은 이것으로 세 번째였다. 그 사이 서로를 물어뜯는 것을 관둔 -일방적으로 한 명이 당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 둘은 더욱 건실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의한 듯하다. 이 정도면 이 기체 내부 곳곳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이 산재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로제르트와 레비는 결국, 오늘내일 중으로 전체적인 점검을 해보기로 결론을 내린다.
   
   이튿날, 로제르트가 강력히 주장대로 환경관리 및 생활지원 부문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그것은 이 기체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터에, 바삐 움직여야 했다. 걸음이 가볍고, 태도가 능숙한 것이 이곳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그리고 레비는 이따금 발을 멈추며, 주변을 확인하곤 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발견했어?”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해서 말이지.”
   
   예를 들면? 스스, 하고 무엇인가 배를 깔고 기는 소리. 스프링클러 소리를 잘못 들은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이쪽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사소한 의문에서부터 비롯된 시답지 않은 잡담이나 나누며, 넓은 중앙 홀을 통과하자 거대한 장치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의 겉 부분에는 초록색 불빛들이 알록달록하게 매달려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나하나를 세어보며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정확히 중간 부 즈음에 불빛 두 개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음.” 그를 확인한 레비가 고개를 갸울이며 중얼거렸고.
   
   “그래도 다음 목적지까지는 버틸만….” 그에 답하던 로제르트의 말이 도중에 멎었다.
   
   쿵,
   
   그 무엇보다 불길한 전보이다.
   
   천장 위를 동시에 바라보던 둘은.
   
   “저거, 멸종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아니고, 남았다고는 들었어.”
   “그 몇이 여기에? 운도 없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달음박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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